외국산 오렌지·포도 수입 증가
르포-수입과일 90% 검역… 부산항을 가다
농민신문 5/31
“지난 3월부터 미국산 오렌지 등 외국산 과실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어요. 엄청난 물량에 대한 검역작업에 검역관들이 총동원되지만 끝이 보이지 않아요.”
22일 오후 부산항 감천부두. 미국산 오렌지를 실은 40피트짜리 컨테이너 40여개가 사열하듯 줄지어 서있다. 국내 시장에 판매되기 위한 마지막 단계로 검역 통관절차를 기다리는 모습이었다. 이날 하루 검역대기 물량은 6,000t. 감천부두와 인근 감만부두엔 이처럼 매일같이 수입 농산물이 넘쳐난다.
부산항 검역을 맡고 있는 국립식물검역소 영남지소 신원우씨는 “오늘 혼자 검역할 물량이 오렌지 720t”이라며 “이를 훈증처리한 다음 위해 외래병해충 유무를 가리기 위해 시료채취까지 하려면 하루가 모자란다”고 말했다. 영남지소의 과실검역팀이 감당하기에는 현실적으로 벅찬 물량이 들어오고 있는 셈이다.
과실시장 개방이 확대되면서 부산항은 이제 국내 최대의 과실 수입항이 됐다. 오렌지·키위·포도 등 수입과실의 90% 이상이 부산항을 통해 전국의 과실시장으로 분산된다. 오렌지의 경우 지난해 수입량 12만8,181t가운데 97.6%인 12만5,137t이 이곳으로 들어왔다. 영남지소 이동모 계장은 “오렌지는 해마다 3월부터 물밀듯이 들어오기 시작해 8월까지 이어진다”며 “정점을 이루는 5월 중순부터는 호주를 비롯해 스페인,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수입선도 다변화된다”고 밝혔다.
올해 들어 4월 말까지 영남지소 오렌지 검역물량은 9만8,094t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9.5%가 늘어났고, 뉴질랜드산 키위는 5,582t으로 2배 이상 급증했다. 칠레와 미국산 포도의 경우도 4월 말 현재 검역물량이 1만422t을 기록, 지난해보다 11%가 증가했다.
수입과실의 파상공세에 국내 과실시장은 이미 상당 부분 잠식된 상태. 국내산 시설포도는 한·칠레 FTA(자유무역협정) 발효 2년을 넘긴 현재 대형 할인매장에서 거의 자취를 감췄다. 국내산 키위도 저장유통되는 외국산 키위에 기가 눌려 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외국산 오렌지·키위·포도를 ‘맛이 있어서’ 구입한다는 소비자 비중은 2005년 44~51%로 2002년(38.3%)에 비해 5.3~12.6%포인트 늘었다. 김경필 농경연 연구위원은 “외국산 과실 수입량은 앞으로 더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며 “이로 인한 과실 구입패턴 변화는 소비자의 입맛이 외국산에 길들여지게 하는 등 국내 과일·열매채소류 산업에 큰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50%의 관세를 물고도 국내 시장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미국산 오렌지는 특히 위협적인 존재다. 고성보 제주대 교수는 한·미 FTA가 체결돼 관세가 완전히 철폐될 경우 향후 10년간 제주감귤 피해액이 1조원을 훌쩍 넘어설 것이라는 연구 결과를 최근 내놓았다. 이쯤되면 감귤로 먹고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제주 농업은 운명을 장담할 수 없게 된다. 제주 감귤농가들이 부산항을 주목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