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안에 농지를 구입하려는 제주 농업인이 하나, 둘 늘고 있다. 미래에 감귤농사를 짓기 위해서다. 물류비도 적게 들고 토양과 일조량이 품질을 높이는데 적당하기 때문이다. 더 큰 이유는 지구온난화 때문일 것이다.
1990년대 초에도 비슷한 현상이 있었다. 산남의 서귀포지역 농가들이 산북의 산양 등에 감귤농사를 짓기 위해 농경지를 산 농가들이 많았다. 서귀포 지역의 농경지는 비싸고 산북의 농경지는 쌌기 때문에 좁은 서귀포 감귤원을 팔고 넓은 산북의 농경지를 구입했다. 감귤 주산지가 산남에서 산북으로 이동할 것이라는 것을 예견했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 설 대목 때 가락시장에서 최고 값을 받은 노지감귤은 한경의 산양작목반이 출하한 ‘황토재배 산양감귤’이었다. 수확시기만 조절하면 맛있는 감귤의 대명사가 서귀포 감귤에서 산양과 조천감귤로 변할 날도 멀지 않았다.
제주지역은 온난화 영향을 가장 크게 받는 지역이다. 지난 100년간 지구기온이 0.74℃ 높아졌는데, 한반도는 1.74℃나 높아졌다. 그 중에서도 제주도는 지난 40년간 해수면이 22㎝가 높아졌다.
제주의 온난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이유가 무엇인지는 정확하지는 않지만 필리핀에서 제주로 흐르는 수온이 높은 쿠로시오해류와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기후 온난화는 농업의 많은 부분을 변화시키고 있다. 10여년 전 강원대학교 하우스에 녹차 묘종을 식재한다고 했을 때 사람들이 웃었다. 그러나 지금은 보성의 녹차가 강원도 끝인 고성에서도 재배된다. 금산은 인삼 주산지다. 금산농협은 모두가 알아주는 인삼농협이다. 그러나 몇 년이 지나면 횡성과 홍천에도 인삼농협이 생기고 횡성에서 인삼을 사다가 금산에서 팔아야 될 날도 멀지 않았다고 걱정한다. 포도는 김천이 본고장인데 강원도 영월에서 재배되고 매년 재배면적이 늘고 있다. 영천사과가 강원도 양구까지 올라갔다.
제주의 한라봉이 남해안에서 재배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작년말 전북의 김제에서도 재배된다는 농민신문 기사를 읽고 깜짝 놀란 감귤농가도 많다. 더 놀란 것은 남해안에서 생산되는 한라봉이 제주 한라봉보다 훨씬 당도가 높다는 것이다.
남해안 한라봉이 제주 한라봉보다 당도가 높은 것을 자연의 혜택으로 보는 사람이 많다. 일조량이 많고 점토가 많은 토양이어서 수분 스트레스가 쉽다는 얘기를 한다. 그러나 근본적인 차이는 고생하며 벼, 사과, 배 농사를 짓던 남해안 농업인들에게는 한라봉 농사처럼 쉬운 농사가 없다고 한다. 배 하나 하나를 봉지로 싸고 나뭇가지를 지지대에 묶어서 햇빛이 잘 스며들게 해 온 정성이 한라봉을 재배할 때도 그대로 적용된다.
자연 조건보다 재배하는 정성의 차이가 품질의 차이로 나타났을 것으로 생각된다. 제주는 육지보다 기후가 따뜻하기 때문에 감귤재배라는 풍요를 누려왔다. 더 더워지면 그 특권은 남해안 농가에게로 넘어간다. 그래서 농협과 감귤농협, 농업기술원과 대학은 온난화를 대비한 기술개발과 지도에 마음을 합쳐야 한다. 스스로 엄격한 품질규정을 만들고 남해안 감귤과 차별화를 추진해야만 10년, 20년 후에도 제주를 먹여 살릴 생명산업으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남해안 지역에 ‘남해감귤농협’이 생기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 감귤이 겨울 배추처럼 주산지가 제주에서 남해안으로 옮겨가지 말라는 보장도 없다.
온난화가 가져올 제주 감귤의 변화는 예측하지 못할 정도로 클 것이다. 대비책을 만들어야 한다.